미니 메타버스의 선결조건: 인간-컴퓨터 연결
- J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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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22. 10:59
1992년에 소설가 닐 스테픈슨이 공상과학소설 스노우 크래쉬를 냈습니다. 메타버스, 아바타, 치안이나 국방같은 국가 고유 기능의 민영화 등등 개념이 등장합니다.
3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일처럼 느껴집니다. 왜 그러냐면, 이 이야기의 핵심 소재가 메타버스에서 퍼지는 인간 정신을 조종하는 바이러스(!)라서 그렇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완벽한 인간-컴퓨터 연결(BCI: brain-computer interface)이 실현되었다고 봅니다. 현실에서는 랩 수준에서 영장류에게 칩과 전극을 심어 생각 만으로 간단한 아케이드 게임을 돌리는 수준 밖에 안되고요.
일론 머스크의 스타트업 중 하나가 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스페이스 X의 로켓 재활용 처럼 급진전을 볼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BCI가 실현되려면 사고기능을 물리적 실체를 지닌 신체 생체기관의 작동으로 완벽하게 1대1로 대응시켜 환원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인간 정신이 어떻게 작동하는 건지 아무도 몰라서 그렇습니다.
뇌과학의 첨단에서조차도 자기공명장치(MRA)로 "시신경이 자극받으면 뇌의 어느 부분에 혈류가 증가한다"는 식의 관찰만 있을 뿐이지, 생체기관을 복제해서 재현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하여튼, BCI가 진전되지 않는 이상 메타버스는 그냥 마케팅 용어일 뿐입니다. 마우스, 키보드, 현 세대 VR, AR 정도 가지고는 택도 없어요.
추신: 그리고 "인간-컴퓨터의 완벽에 가까운 연결의 실현"은 저 같은 문돌이 입장에서는 굉장히 끔찍한 일입니다. 인간 고유의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모든 고도의 사고작용들이 한낱 "물리적 실체를 지닌 생체기관들 사이의 전기 신호 체계"로 환원된다는 뜻이거든요. 가령 경건한 종교적 체험, 희생 정신, 협력과 배신, 천재적 발상 등등 모든 것이 "뇌의 어느 부분과 어느 부분이 어떤 방식으로 신호를 주고받은 결과"로 해명된다고 상상해 보세요. 여기까지 간다면 거꾸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천재성을 부여하거나 절대로 배신하지 않거나 갤럭시 플래그십에 16기가 램을 넣도록 "프로그래밍" 하는 단계로 나아가지 않겠습니까?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컴퓨터-인간 직결 없는 메타버스가 싸이월드랑 무슨 차이인지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