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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Pick]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만드는 것, <어른이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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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는 현실에 있다, 영화 외부로 향하는 진정성 어린 시선

 

어느 영화를 볼 때, 가끔은 다음과 같은 문장을 서두에 마주할 때가 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문장을 통해 영화가 얻는 건 진정성이라는 이름의 ‘몰입’이라고 할 수 있다.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에 보다 더 밀착감을 느끼게 하려는 객석과 스크린 간의 동일시. 본래 영화라는 게 허구의 산물이라는 점을 알고 있는 우리에게, 영화가 보여주려는 건 정말로 있었던 이야기라는 이름의 ‘리얼리티’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리얼리티를 사뭇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그것 또한 백일몽(白日夢)임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미 영화 자체가 허구인데 또 무엇을 ‘리얼하게’ 여기라는 말인가. 영화가 아무리 실화를 바탕으로 했더라도, 그것은 실화를 실화처럼 ‘재현’했다는 점에서 원본의 아우라를 잃어버린 것이다. 이때 우리는 아우라를 언급한 대목에서, 이미 그것이 영화의 리얼리티에 대한 가장 고전적인 물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즉, 백일몽의 리얼리티란 무엇인가. 요컨대, 그것은 거울 나라의 앨리스가 마주한 거울 속의 흐릿한 상에 가깝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보드리야르가 말했던 시뮬라크럼 (simulacrum)의 개념에 정반대로 부합한다. 

 

보드리야르는 현대 사회의 미디어를 두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사건 현장을 사진으로 찍어, 신문기사로 내보내고, 그 신문기사가 다시금 인터넷에 올라오는 현대 사회에서 본래의 ‘현장’은 가장 허구적인 것이라는 게 그 주장의 요지이다. (그리고 이는 현장보다 인터넷 반응에 더 영향을 받는 현대인들의 모습에 잘 나타나 있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실화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든 영화들에게는 ‘존재하는 것(실화)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영화) 만드는’ 힘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칭해야 할까. 포스트 시뮬라크럼? 네오 시뮬라크럼? 안티 시뮬라크럼? 

 

용어야 어떻든 간에 재미난 일이 벌어진다는 점은 확실하다. 아우라의 손실을 직감하는 순간 우리는 영화에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 흥미롭게도 질문이 향하는 지점은 본질에 대한 의문이 아닌, 원본에 대한 호기심이다. 마치 저승으로 향하던 망자가 이승에서 자신을 호명하는 목소리에 홀려 다시금 제사상 앞으로 끌려오듯, 스크린이라는 이름의 삼도천을 건너려던 리얼리티는, 이승이라는 이름의 객석으로 불려 오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의 서두에 실화라는 점을 적시한 영화가 진정으로 의도하는 것은, 영화 내부가 아닌 영화 외부로 향하는 진정성 어린 시선일 테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말했듯이, “진짜는 현실에 있다. Reality is Real”)  

 

아우라’의 주체가 되어, 그 자신을 예술로 승화하고자 하는 이의 열정 

 

<어른이 되면>,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다. 그러므로 허구의 이야기를 ‘재현’하는 영화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글의 첫 장을 원작이라는 리얼리티에 할애한 것은, 이 영화 자체가 하나의 원작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아주 간단한 설명을 곁들이면 다음과 같다. 장혜영 감독이 기획, 제작, 촬영하여 만든 이 영화는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즉 이 영화는 ‘나의 일상이 곧 영화가 되는’ 1인칭 시점을 취한다. 그리고 당신은 이러한 1인칭 시점에서 <시네마 천국>과 같은 ‘인생=영화’의 공식을 성립하게 될 테다. 

 

쉬운 문제풀이를 위해서, 우리는 이 영화의 토대가 된 게 장혜영 감독의 유튜브 채널이라는 점 또한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영화 이전에 있었던 건 장혜영 감독이 자신의 동생과 함께 출연한 ‘1인 미디어’였다. 장혜영 감독은 이 유튜브 채널을 통해 동생을 알렸고, 모금 사이트인 텀블벅(Tumblbug)에 프로젝트를 개시했다. 그렇게 모인 돈으로 그녀는 영화를 촬영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장혜영 감독의 눈이 영화가 되고 입은 서적이 되는 것을 목격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아스트뤽(Alexander Astruc)의 카메라 만년필 설이 비물질과 물질이라는 이름으로 디지털 시대에 맞추어 새롭게 재탄생하는 과정을 이 영화에서 목격한다.  

 

어떤 문학 작품에서 작가의 발자취를 느낄 때가 있다. 영화감독에게도 문학 작가와 같은 발자취가 남는다는 게 카메라 만년필 설을 통해 아스트뤽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였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문학에서 사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분류되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는, 글이라는 한 차원의 포장재를 통해 ‘리얼리티’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이를테면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작가 이야기 같지만 작가의 이야기는 아니다. 또한 이상의 <날개>는 작가 이야기 같지만 작가의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러한 분류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존재하는 것은 삶이요, 존재하지 않는 것은 영화다. 말하자면, 우리는 보드리야르가 주장했던 현대 사회의 일면이 오히려 현대 사회의 리얼리즘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이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가 있는 것이다. 

 

존재하는 이유, 우리가 간과하고 지나쳤던 소중한 시간들

 

그래서 나는 보드리야르와 아스트뤽의 논의를 반대로 진행해보려 한다.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써내리는 것, 이른바 ‘아우라’의 주체가 되어 그 자신을 예술로 승화하고자 하는 이의 열정은, 말 그대로 그 자신이 만년필이 되어 영화의 시 분 초를 구성하게 된다. 즉 현대의 만년필 설이라는 것은 카메라가 감독의 필기도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만년필이 되어 직접 글씨를 적어 내려가는 능동적인 이름의 시네마이다. 이러한 능동성에서 우리는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성토하게 된다. 작게 보면, 그러니까 인생은 영화다(La Vita e Bella)라는 공식에서는 우리가 살아온 시간에 대한 리얼리즘을 의심하게 된다.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그곳에 ‘있었음(하이데거식의)’에도 우리가 간과하고 지나쳤던 소중한 시간에 대한 뒤늦은 성찰을 우리는 해보게 된다. 

 

이 술어를 좀 더 풀어보자면, 우리는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에서 말했듯이 ‘존재자의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존재자는 삶 속에 내쳐진 우리라는 이름이다. 여기서 존재란 그런 시간 안에서 우리가 스스로를 탐구하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어떤 만년필을 통해 어떤 문장으로 써내려가는지를 진지하게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장혜영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 때 그러한 성찰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장혜영 감독이 한국일보 김지은 기자와 나눈 인터뷰를 살펴보도록 하자. 

 

열세 살 동생을 장애인수용시설에 맡기겠다는 부모의 통보로, 그녀는 처음 혼자 남겨졌다. 그리고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누구지. 뭘 좋아하지, 뭘 싫어하지.’ 나이 열넷이 될 때까지 자신을 중심에 두고 생각해본 적이 없던 거다. “‘혜정의 언니’라고 생각하면 지금 당장 무얼 해야 하는지가 떠올랐는데, 동생이 없어지니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더라고요.” (김지은, “연세대를 자퇴했다, 장애동생과 산다, 영화로 찍었다” 한국일보, 18.12.28, 12면)
 

멀쩡하게 다니던 명문대를 졸업반이 되어서 왜 자퇴하느냐는 물음을 받은 그녀가 시선을 돌린 곳은 바로, 장애인 시설에 17년 동안 갇혀 있던 동생이다. 위의 인터뷰에서 장혜영 감독은 자기 자신에 대한 물음을 일차적으로 던지면서, 동시에 ‘…의 언니’라는 말로 자신을 그에 따르는 주어가 필요한 존재로 서술하고 있다. 요컨대 이것을 위의 하이데거식 정언명령으로 번안하면 다음과 같다. 알 수 없는 것은 대학 사후 세상에 내쳐진 존재자 ‘장혜영’이 존재하는 이유이고, 그것은 ‘…’이다. 따라서 그에 수반하는 주체를 수복하려면 그 ‘…’가 어떤 방식으로 세계에 존재하는지를 알아야만 한다. 이때 내가 해당 문장에 달고 싶은 주석은 그 ‘…’가 장혜영이라는 이름이라는 것이다. 

 

어른이 된다면, 우리는 보다 더 ‘리얼’하게 사고할 수 있을까? 

 

이제는 내가 다소 산만하게 늘어놓은 여러 이야기를 한자리에 모을 때인 듯하다. 나는 앞서 카메라 만년필 설이라는 이름으로, 감독 개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일종의 사소설처럼 써내릴 수 있음에 대한 가능성을 언급했었다. 즉, 인생이 곧 영화라면 우리는 그 인생이 마치 ‘거짓말 같은 일(혹은 그토록 행복했던, 꿈꾸는 시간)’들의 연속이라고 가장 먼저 떠올릴 텐데, 나는 그런 거짓말 같음이 오히려 현실의 이야기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른바,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만드는’ 건, 진실을 허구처럼 포장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허묾에서 오는 우리의 참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영화가 사회문제를 어떻게 보여주고 또한 그에 대한 참여를 어떻게 유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은 그동안 많이 있어왔다. 사실 내가 글의 서두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연 것이 바로 그 때문인데, 최근 한국에서 개봉한 <생일>과 같은 영화들에 대해서 우리가 나누는 대화가 그런 부류일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해당 영화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이다. 나는 앞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드는 게 현대 사회 미디어의 특징이라고 말했었다. 말하자면 우리는 자칫하면 그런 영화들을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오인하게 될 위험이 있다. 이것은 단순히 관객이 영화에 대해 담론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에 따라서 갈리는 성찰의식이 아니다. 마셜 맥루언의 말처럼, 미디어는 우리의 사고를 언제나 지배해왔고 따라서 그러한 사고방식이 어느새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으리라고는 장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생각하기에, 장혜영 감독의 이 작품에는 그러한 미디어의 사고구조를 반대로 돌림으로써 실화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을 ‘리얼’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요컨대 우리가 이 영화에서 목격하는 것은, 미디어를 통해 탈현실화의 과정을 거칠법한 이들에게서 진정성과 핍진함을 끌어내는, 그녀의 ‘만년필’이다. 물론 단지 이러한 시도가 있다고 해서 이 영화가 장애인 인권과 시설에 대한 유의미한 피드백을 우리에게 준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가 문제를 조명하기 이전에, 문제를 생각하는 우리의 문제의식과, 그 사이에 서있는 존재자의 존재에 대해 물음을 던졌다는 점을 높게 평가하고 싶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현실과 비현실 사이를 필연적으로 오갈 수밖에 없는 게 현대 사회의 우리가 아니던가. 그러한 프레임은, 스마트폰이나 뉴스의 댓글란처럼,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다’.

 

여기에 당신이 허락한다면, 마지막으로 나는 짧은 소회를 한 문장 적어두고 싶다. 이 영화에서 장혜영 감독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른이 되면’이라는 작품의 제목은, 세상이 자신에게 주는 제약을 물어오는 동생의 물음에 답했던 자신이라고 말이다. 이 작품에서 장혜영 감독은 그런 제목에 자신과 동생을 겹쳐 놓는 방식으로 영화를 촬영하고 있다. 어른이 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지만, 그것은 그저 환상에 불과하므로. 그렇다면 왜 환상인가? 성숙함의 기준이 어른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결코 어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댓글
2
글쓴이
숲속의참치 기변증 님께
2019.04.20. 23:01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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