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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pick] 상실도 치유도 아닌, 그냥 그곳에 있다는 안도감, <하나레이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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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도 치유도 아닌, 그냥 그곳에 있다는 안도감 : <하나레이 베이>

파도가 넘실대는 해변에는 어느 여인이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이국적인 풍경 속에 해변 의자를 끼고 앉은 그녀의 뒷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처량하다. 이때 카메라가 포착하는 풍경은 정확하게도 해변을 등진 그녀의 후방이다. 그러니까 사실 이 이미지는 액자 속에 담긴 한 편의 순간처럼 보인다. 요컨대 이 쇼트에서 다음 쇼트로 넘어가기 전에 느낄 만한 하나의 심상은, 이것이 한 편의 그림과도 같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그 여인이 그때 느끼는 심정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해변의 여인이라는 이 이미지가 <하나레이 베이>라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라는 점을 알기 위해서는 영화를 시작부터 끝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이미지는 영화의 시작 부분이 아니라 중간 부분에서 묘사되기 때문이다. 영화 내에서 반복되는 10년의 시간에는 그녀가 10번의 해당 장면을 거쳤다는 사실이 담겨있는데, 그럼에도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단 한 번에만 불과하다. 말하자면 우리가 보는 것은 영화의 도입부로부터 떠나온 ‘10년 후’라는 자막, 그리고 그중의 한 편인 셈이다. 따라서 이것이 순방향으로 정렬된 시간의 단편이라는 점에 빗대어볼 때, 우리가 보는 것은 그런 시간의 편린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을 테다.

우리가 보는 것은 그런 시간의 편린

시간을 잘게 썰어서 영화관으로 옮겨 놓으면 그것이 스크린 위에서 한 편의 영화로 탄생한다는 재미있는 가정을 해보자.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특기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멈춰버린 여인의 모습은 영화의 중간 지점에서 처음으로 드러나는데, 정작 그녀의 시간은 아들을 잃고 난 10년이라는 세월의 중간에 자리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쉽게 말해, 이 영화는 시간의 편린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수복하려는 이의 움직임에 가까워 보인다. 다르게 말하면 영화의 안팎에서 서로 다른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시간이 자리하는 곳은 명백하게도 십 년 후라는 세월의 한 지점이다. 이 사실은 영화의 도입부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 사치(요시다 요)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화가 시작하고 10여 분 간의 짧은 사연을 소개하고 나면 영화는 갑작스레 시간을 달려서 10년 후의 한 지점에 안착한다. 그러므로 이 영화가 그런 상실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우리는 자연스레 추측하게 된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이러한 추측이 단지 우리의 착각일뿐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카메라가 보여주는 것이 10년 후의 세월이기 때문이다.

그런 장면이고, 그런 순간이다

어긋난 추측은 우리가 카메라에 동일시하기에 벌어지는 오류이다. 그녀 시간의 후반부를 포착하는 이 카메라에는 이 영화가 마치 회복과 치유의 영화인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힘이 있다. 요컨대, 이 영화의 주된 무대인 해변에 밀려오는 파도처럼 그녀의 감정은 밀물과 썰물이라는 조수간만의 차를 반복하고 있다. 이에 따르자면 사건이 벌어진 후에, 그러니까 큰 파도가 밀려온 후에 다시금 돌아가 버린 파도는 그러한 사건을 겪고 난 뒤에 벌어지는 상실의 감정들을 표현하는 것이 된다. 이게 바로 썰물이다. 따라서 영화의 카메라가 포착하는 썰물의 광경에서 우리가 발을 내디디는 곳은 감정이 빠져나가고 축축하게 젖은 모래밭인 셈이다.

그러나 영화를 이해함에 있어 스크린 안의 세계에 발을 내딛고자 한다면, 요시다 요의 해변 위로 빠져들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영화에서 사치가 스스로 말하는 10년의 세월을 전제로 여겨야 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이 시간은 10년 동안 반복되었던 것이고, 그런 장면이고, 그런 순간이다. 영화라는 게 시간의 편린이라는 점에서는, 이것을 반복해서 관람하는 행위가 사치의 그런 행동에 비유될 수도 있을 테다. 사치가 10년 동안 하나레이 베이의 같은 자리에서 보고 듣고 느낀 시간의 편린들이 그곳 해변에 밀려오는 파도의 조수간만에 동화하면서 다가오는 기시감의 습격은 마치, 영화가 끝나가기에 다시 한 번 보고 싶다는 아쉬움이 아니라 언제나 그곳 스크린 안에 있을 테니 여유 있게 와서 보라는 식의 안도감일 테다. 따라서 이 영화는 상실도 치유도 아닌, 그냥 그곳에 있다는 안도감의 영화이다.

밀려오는 기억과 떠나가는 기억 사이에서

반복된 순간, 이른바 영원회귀하는 시간에서 갑자기 이탈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는 것은 카메라가 해변에 앉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와중이다. 아들 또래의 어느 아이를 마주한 그녀에게, 밀물과 썰물이 조화를 이루던 마음의 해변에서 얻은 균형이 깨어지고야 만다. 말하자면, 마음의 해변에서 아들의 기억을 불러내던 그녀에게는 아들의 기억을 몸에 입은 표상적인 존재들이 다가오는 것이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이것이 그녀에게 치유라던가 회복이라는 은혜를 입은 것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이미지는 파도가 자아내던 시간의 주름 속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온 오류의 형상으로 다가오게 된다.

만약 당신이 놀란의 <인셉션>을 보았다면, 림보의 끝자락에 자리한 해변에서는 그보다 윗 단계의 무의식에서 목격되던 무의식의 공격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프로이트의 충동이론을 옮겨놓은 듯한 이 해변에는, 무의식에 투입된 ‘이질적인’ 존재를 목격하는 자아의 복제가 없다. 왜냐하면 그런 무의식의 심층에는 자아가 인격이 아니라 공간 자체로서 형상화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해변의 모습이 아마도 <하나레이 베이> 속에서도 비슷하게 목격된다는 점을 느낄 수가 있을 테다. 밀려오는 기억과 떠나가는 기억 사이에서 부유하는 시간의 한 지점을 줄곧 탐사하던 그녀에게 그곳은 사실 그녀의 의식 속이었고, 그러다가 갑자기 다가온 의식 밖의 존재를 통해서 이곳이 다름 아닌 림보라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이다.

영화의 안과 밖, 사치의 시간과 영화의 시간

 

 

 

어쩌면 이것이 편한 이분법으로 나뉠 수도 있다. 물론 방법론으로 그렇다. 일상과 비일상이라는 경계의 지점은 마치 해변에 밀려오는 파도처럼 불분명하다. 우리는 파도가 칠 때 그것이 썰물인지 밀물인지를 대략 알 수는 있어도 그것이 갈라지는 지점이 언제인지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사치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것은 아들이 떠난 이후도 아니고 아들이 살아있는 시간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밀려오는 순간일 뿐이다. 그런 식의 과거를 보여주는 인서트가 삽입되는 것 또한 타임라인의 어느 지점을 회상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흐릿해지는 경계가 영화를 통해 되살아나고 있다는 편집의 표식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즉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이 영화의 안과 밖이 명확하게 구분되어있음을 알고, 카메라가 목격하고 편집이 이루어지는 게 다름 아닌 영화의 시간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만 한다.

 

 

 

영화에서 편집점 사이를 부드럽게 잇는 기술을 두고 불가시편집이라고 말한다. 편집점이 튀면 그 전후의 쇼트가 몹시 이질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생은 영화라고 말하는 어느 이야기에서는, 이러한 영화의 편집방법론은 마치 기억의 순간을 잊으라고 말하는 잔인한 목소리일 수도 있다. 스크린 안에 갇혀버린 반복되는 영화의 시간이 하나레이 베이에 담긴 사치의 기억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영화가 불가시편집을 요구하는 것은 그러한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아주 보드랍게 잊어가라고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기억의 방법론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나은 선택인지를 고를 수도 있다. 영화의 안과 밖, 사치의 시간과 영화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는 이곳 해변에서는 시간의 주름이 짙은 안개를 만들어내고 있고, 그것이 파도의 주름(해변)에서 나무의 주름(나이테)으로 이어지는 순간에서는 그 두 가지 공간이 하나로 이어지고 있음을 몸으로 깨달을 수가 있을 테다.

 

 

 

바로 그렇게, 영화는 아들의 손바닥 주름에서 시작해서 손바닥 주름으로 끝이 난다.

댓글
3
새봄추
1등 새봄추
2019.05.08. 23:17

스크롤을 마구 내려서 끝이난다

[새봄추]님의 댓글을 신고합니다. 취소 신고
글쓴이
숲속의참치 새봄추 님께
2019.05.08. 23:19

차단 

[숲속의참치]님의 댓글을 신고합니다. 취소 신고
새봄추
새봄추 숲속의참치 님께
2019.05.08. 23:21
[새봄추]님의 댓글을 신고합니다. 취소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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