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외롭고 그리워서 미칠거같네요
- 기븐
- 조회 수 218
- 2019.08.25. 19:11
딱히 글을 올릴데도 없어서 그냥 여기에 올려봅니다
전 지금까지 여자친구를 사귀어본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그래서 종종 주변에서 뭔 여자친구가 없어서 외롭다느니 하는걸 보고 농담식으로 "결핍은 충족을 느껴본 사람들만 느낄 수 있다", "난 애초에 여친이 있어본적이 없어서 외로움도 모른다" 했었는데
그런 저도 오랜 기간동안 정을 준 상대가 있었습니다
사람은 아니고, 학교 캠퍼스 내에 살던 고양이입니다.
제가 동국대를 나왔는데, 동국대는 불교학교기 때문에 캠퍼스 가운데쯤에 보면 정각원 이라고 하는 절이 하나 있습니다.
여기서 한 08년인가 10년인가 암튼 그때부터 살던 암컷 고양이가 한마리 있었습니다. 이름은 반야심경 에서 따온 반야 라고 하구요
암컷이다 보니 새끼를 하도 많이 낳아서 부지 내에 반야의 새끼가 엄청 많았는데, 제가 전역할때쯤에(11년도 말~12년초) TNR을 받아서 반야랑 반야가 마지막으로 낳았던 새끼 두마리 모두 중성화가 됐습니다.
제가 12년초에 군복학을 해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정각원 근처 벤치에 반야 새끼들이 앉아있는걸 종종 보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쇼핑백을 들고 근처를 지나가다가 반야 새끼를 보고 쪼그려앉아서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반야가 나타나더니 야옹야옹 울면서 다가오더군요.
아무래도 쇼핑백에 간식을 담아온줄 알았던거 같은데... 아무튼 그게 첫 만남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만지려고 하면 거부하더니 계속 자주 만나다 보니까 어느순간 쓰다듬어도 가만히 있더군요.
그 이후로 거의 6년을 같이 지냈습니다.
심심하거나 공강일 때면 고양이를 보러 찾아갔고, 나중엔 졸업하고 나서 할게 없어서 도서관이나 다니는 백수생활할때도 고양이랑 몇시간이고 같이 놀곤 했습니다.
여자친구도 없고 동성친구들도 거의 없던 저한테는 고양이가 제일 친한 친구였죠.
아무리 더운날도 추운날도 항상 고양이를 보러 갔고, 같이 학교산책도 하고, 다른 길고양이들이랑 싸우는걸 보고 지켜주기도 하고, 간식도 사서 먹이고, 꽃구경도 하고, 연꽃 호수에 물고기도 구경하러 가고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찍은 사진도 수백장이 넘네요.
그러다가 17년 5월달쯤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볼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왜 안보일까 하고 찾아다녔는데, 일주일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도 학교 어디를 둘러봐도 찾을 수가 없더군요.
누가 잡아서 데려갔거나 학교 어딘가에서 죽었거나 둘 중 하나인데... 얘가 사람에게 쉽게 잡힐만한 애도 아니라서 아무래도 어딘가에서 죽었을 가능성이 크더군요.
하지만 죽는 과정조차 지켜보지 못해서.. 아직도 정확하게 어떻게 됐는지는 모릅니다.
아무튼 고양이를 아는 몇몇 사람들도, 어릴때 고양이를 키웠던 스님들도 행방을 전혀 모르고.. 아무튼 그렇게 됐네요.
상실감은 누군가를 만난 적이 있어본 사람만 느낄 수 있다고, 아무도 안 만난 나는 외로움을 느낄 수도 없다고 농담으로 말했었는데...
알고보니 그건 꼭 상대가 사람이어야만 느낄 수 있는건 아니었나 봅니다.
그냥저냥 잘 지내다가도, 문득 생각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손바닥을 스치는 털의 감촉이 아직도 선명한데, 제 옆에서 눕고 뒹굴고 뺨을 비비던 몸짓이 아직도 선명한데, 더 이상 볼 수 없다는게 너무나도 외롭고 그립네요.
한 번만이라도 다시 볼 수 있다면 소원이 없을텐데...
정말 보고 싶네요.
저도 27년 모쏠입니다 같이 마법 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