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종교 이야기 (긴글 주의)
- Hahn
- 조회 수 496
- 2023.08.25. 23:24
(우선 저는 철학에 조예가 전혀 없는 비전문가이고, 틀린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집 근처 성당에 예비신자 등록을 하고 왔습니다.
강아지를 떠나보내고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빈자리를 메꿔보려 이것저것 배워보기도 하고 상담도 받았었지만, 종교의 도움도 한번 받아보고자 했습니다.
우선 불교 교리를 한번 공부해 보았습니다. 초파일에 강아지 이름으로 연등도 달아주고, 법당에 가서 앉아있으면 뭔가 조금은 위로를 받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중표 교수님의 초기 경전 강의를 진지하게 보면서, 불교 교리에 대해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앞에 어떤 대상이 있고, 우리의 감각기관이 그것을 인식하고 형상화하면, 그 순간 그 대상은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우리 앞에 어떤 대상이 있다, 우리의 감각기관이 그것을 인식한다는 ‘조건’이 맞을 때만 우리 마음속에 형상화되고, ‘조건’이 바뀌면 사라지는 것일 뿐, 우리에게 불변의 ‘자아’가 있고 우리 밖에는 우리와 구분되는 ‘세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제법무아 : 불변의 ‘자아’란 허상이다). 이 세상이 실존하는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존재한다고 보는 데카르트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 아이디어죠.
우리를 포함한 생물들은 먹은 음식을 통해 우리 몸의 세포들을 끊임없이 재구성합니다. 변하지 않는것처럼 보이는 무생물들도 풍화작용을 겪고, 물의 순환까지 생각하면 세상에 변하지 않고 머물러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제행무상 :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
따라서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는 변하지 않는 어떤 ‘존재’도 없으므로 나의 ‘자아’를 그것에 투영하는 것은 허망한 생각이다 라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이 진리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살아가면서 경험을 통해 우리만의 기준을 만들어 나와 세상을 구분하고, 인식하고, 인식된 것 중 좋은 느낌과 싫은 느낌을 구분하고, 좋은 느낌에 집착하게 되지만 좋은 것만 가질 수도, 싫은 것을 피할 수도 없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겨나고, 그 괴로움이 심화되다가 사라지고, 또다른 괴로움이 생겨났다 사라지고를 반복합니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실질적 의미라고 합니다. 전생과 환생 등의 개념은 석가모니 부처님 생존당시 인도의 고대종교에서 기인한 것이구요.).
이 악순환 프로세스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모든 것은 마음에 잠깐 스쳐 지나갈 뿐인 허망한 것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것들을 굳이 이름붙여 ‘구별’하려 하지 않으면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없으니 집착할 것도 없고, 따라서 괴로움이 생겨나지 않으니 위에서 말한 괴로움의 무한 루프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해탈, nirvana). 불교는 이런 깨달음을 얻기 위한 삶의 방식을 가르치고, 꺠달음을 얻은 자를 buddha라고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참 대단한 철학자이자 큰 스승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리의 탐구’라는 측면에서 앞으로도 제 마음 한켠을 차지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장 기댈 곳이 필요했던 제게 조금 엄격하다는 느낌도 들었고, 신앙으로서의 무언가에 대한 제 갈망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성경 창세기에 보면 선악과라는 것을 먹고 선악을 ‘구별’할수 있게 된 최초의 인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그 죄로 낙원에서 쫒겨나지만, 저는 선악과를 먹은 그들이 부끄러움을 알게 된 부분에 주목했습니다. 초월적 존재가 아닌 인간이 그들만의 기준으로 뭔가를 ‘구별’하기 시작하자 이미 그들의 마음 속에 어두운 부분이 생겼고, 아직 몸이 낙원에 머물러 있음에도 그곳은 이미 더이상 낙원이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어쩌면 설립 과정과 교리가 전혀 다른 두 종교가,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삶의 방식이란 측면에서는 공통적인 부분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천주교는 입교하기 위해 6개월 정도의 교육 과정을 거칩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진입 장벽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 부분이 저는 오히려 마음에 들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뭘 믿어야 하는지에 대해 충분히 배울 기회를 부여받는 거니까요. 교육이 끝날 때 쯤 제게 어떤 변화가 있을지는 예상하기 어렵지만, 스스로를 낮추고 반성하는 마음으로 살아보려고 합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 그놈이랑 다시 만날 수 있겠죠.
무겁고 긴 글 끝까지 읽어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리며, 혹여나 제 짧은 지식에 의한 오류 때문에 마음이 상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미리 사죄드리고 싶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십시오.
결국 자신이 살아가는 답을 찾는 거니까요.
득도(?)하시기 바라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