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니다
- 범죄자호날두
- 조회 수 75
- 2019.04.14. 13:52
져스 시절이 생각나지 않을수가없는데요 LA에 있었을 때. 그러니까 이건 아마 제가 94년 LA에 있었을 때 겪었던 이야기인데요. 자전거 타기로 재활을 하고 2주가 지나니까 공을 못 던질 것 같았어요. 다리를 벌리고 힘차게 던지지는 못했지만 하체를 움직이지 않고 상체 팔만으로 공을 던질 수가 있었죠. 트레이너가 못 보게 실내 타격연습 등에 숨에서 계속 던졌어요. 그리고 조금씩 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3주가 지나면서 조금 심하게 운동을 했는지 수술 부위가 심하게 아팠는데 조금이라도 상처가 터지면 내장들이 튀어나온다고 해서 겁이 나서 하루를 쉬었죠. 그리고 팀이 원정을 나가서 나는 안가겠다고 하고 남아 개인 트레이너 형과 계속 훈련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원정의 마지막 경유지인 LA에서 팀이 합류해서 불펜 피칭을 했어요. 전력투구를 하는 모습을 보더니 모두들 깜짝놀랐습니다호투를 하며 제 전성기 시절을 떠올리게하는 LA 다저스 시절이 가장 먼저 생각나기도하고, 경기가 끝나면 나긋하게 전기톱 시동걸리는 소리가 들리던 텍사스 시절도 생각이 나지만 가장 행복하고 찬란했던 시절이라면 한화 이글스에서 제가 가장 애착을 갖는 번호인 61번을 등에 달고 은퇴를 하였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길었던 미국 메이저 리그의 시절보다 한국프로리그에서의 시절을 떠올린다고하면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갖는게 당연하겠지만, 은퇴할때 소속되어 있었던 팀이였을뿐더러 한화 이글스에 있을때 많은 해프닝이 있기도 했었죠. 항상 한화 이글스에 대한 생각을 할때면 오재원 선수와의 작은 트러블도 생각이 납니다. 정말 그때는 많이 화가 나고, 경기에 대한 집착이 남아있었던 시절이라, 두산의 김진욱 감독과 벤치에 대해 항의를 하였고, 그것을 통해 오재원 선수에게도 사과를 받았었죠. 그리고 후에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해설을 맡게 되었는데, 중계를 하던 도중에 오재원 선수에 대한 이 사건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가 되려 오재원 선수가 사과를 하지 않았을 뿐더러, 제가 착각을 하여 지적을 많이 당하기도 한 점에서 부끄럽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