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용 MP3 플레이어 시장의 초창기가 지나 중반에 들어선 2004년-2005년. 당시 북미 시장은 이미 애플이 아이팟으로 60% 이상 시장을 점령했었지만, 최초로 MP3 플레이어를 만들었던 한국에서는 아이팟의 힘이 약했습니다.

이는 사용자들이 선호하는 방식 차이였는데, 북미에서는 크고 무겁지만 용량이 큰 하드디스크형 제품이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작고 가벼운 플래시메모리 제품이 인기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한국은 레인콤의 아이리버, 삼성의 YEPP, 거원시스템의 iAUDIO가 시장의 80%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리버는 사과를 씹어먹는 광고와 함께 H10, H100, H300 시리즈 등 하드디스크형 제품으로 북미 시장을 공략하기도 했으나... 2005년 9월에 시장에 큰 폭탄이 터졌습니다. 

아이팟 나노 1세대.

플래시메모리 제품은 아이팟 셔플만 만들던 애플이 처음으로 마음먹고 만든 플래시메모리 기반 MP3 플레이어. 6.9mm로 아주 얇은 두께를 갖고 있었음에도 컬러 디스플레이를 탑재하고 디자인도 세련된 제품이었습니다. 당시 시장에도 더 얇은 5mm 두께의 인켈 오디오카드가 있었지만 숫자만 표시되는 구형LCD와 전용 단자를 썼고, 7mm 두께의 크리에이티브 무보 슬림은 조그만한 흑백 디스플레이를 썼는데, 아이팟 나노는 달랐습니다.

허나 디자인보다도 충격적이었던 것은 가격이었습니다.

2005년의 한국의 MP3 플레이어 시장은 2인치 정도 컬러디스플레이에 동영상이 돌아가는 고급형 제품과, 기존처럼 음악재생만 혹은 동영상은 맛보기 정도로 돌아가는 보급형 제품으로 양분된 상태였습니다. 고급형 제품의 대명사인 아이리버 U10은 512MB 용량이 29만 9천원, 1GB 용량은 34만 9천원에 출시됐습니다. 고급형이 아닌 제품도 아이리버 H10Jr(1GB 29만 7천원), iAUDIO U3(1GB 22만 9천원) 정도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팟 나노는 2GB 23만원, 4GB 29만원으로 출시됐습니다. 마치 2014년에 샤오미 10400mAh 보조배터리가 처음 세상에 등장했을 때와 같은 수준의 충격적인 가격 폭탄이 터진거죠.

그 이후 아이튠즈를 이용해야만 음악을 넣을 수 있는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국내시장을 포함해 하드디스크형 제품을 선호하지 않았던 (북미를 제외한)전세계 MP3 플레이어 시장도 애플의 지배가 시작되었습니다. 국내 중소기업들은 망하거나 PMP 제조업체로 전환(디지털스퀘어 -> 디지털큐브)했고, 기존 3대장들은 동영상 재생성능을 강화한 고급형 제품으로 어느정도 버티는 듯 했으나... 아이팟 터치의 등장으로 이것도 어려워졌지요.

여하튼... 그렇게 시장의 게임 체인저였던 아이팟 나노 1세대입니다. 배터리 폭발 문제로 리콜하고 나중에는 재고가 떨어져서 신형으로 바꿔주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 1세대의 디자인이 가장 마음에 들어서 여전히 바꾸지 않고 갖고있습니다. 

지금 봐도 애플은 이 이중사출 플라스틱과 스테인리스 스틸을 같이 쓰던 이 시절이 가장 디자인이 예쁜 시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