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ARM은 크고 아름다운 물건을 만드는 회사가 아닙니다.

ARM의 기본적인 사업 모델은 단순하고, 저렴하고, 만들기 쉬운 IP를 저렴한 가격에 광범위한 영역에 라이센스 해주는겁니다. 그로인해서 숫적으로는 세계를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압도적인 물량을 자랑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회사 자체의 규모, 특히 매출과 영업이익은 의외로 다른 반도체 공룡들에 비할 바가 못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다보니 A76 세대에서 원히트원더로 꽤 잘뽑혀 나온 물건이 나오긴 했는데, 그건 하다보니까 어떻게 일이 잘 풀려서 좋은게 한번에 나와준거지 체급이 있고 예산의 한계가 있는데다가 이걸 전부 커팅엣지급 플래그쉽 아키텍쳐에만 투자하는게 아니니 늘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당장 이전세대들만 해도 큰 전환점에서는 한번씩 고꾸라지고 이걸 뒷세대 1~2년에 걸쳐서 수습하던게 일상이었습니다.

스마트폰에서 본격적으로 코어 덩치를 키워나가서 엔트리급이나마 x86 코어들과 비빌수 있게 된 첫세대인 A15만 해도 초기세대 AP들은 벌써 TI의 OMAP은 받아삼키지도 못하고 허우적거리다 나가떨어지고, 타사도 1세대는 전성비가 많이 떨어지는 편이었고, A57 세대에선 아예 첫세대 부터 불바다가 펼쳐졌죠.

그리고 퀄컴의 스콜피오, 삼성의 몽구스로 시작되는 자체 아키텍쳐 팀은 사실 원래 이런 ARM의 한계점들을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최상위의 커팅엣지급 플래그쉽 아키텍쳐 설계를 자체적으로 해내는걸 목적으로 만들어진 팀입니다. 그랬던걸 그냥 투자감소 -> 결과물악화의 음의 피드백이 이어진 끝에 돈아깝다고 왜 아웃풋이 안나오냐고 개선을 위한 투자와 재조정에 공을 들이는 대신 두 회사 다 근시안적으로 해체해버린것이고 그 결과가 이렇게 돌아오는겁니다. 늘 말하지만 소 잡아먹고 나면 배는 부르고 맛은 있겠습니다만 다음 농번기가 오면 지옥이 열리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