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GM의 호주 계열사이자 호주 유일의 고유 자동차 업체였던 홀덴은 큰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호주의 마지막 자동차 공장이었던 엘리자베스 홀덴 공장을 닫은 뒤, 다른 라인업은 한국GM과 오펠, 쉐보레, GMC 등 다른 GM 계열사에서 들여오게 되었지만, (덕분에 평소엔 만날 일 없는 차량들이 같은 홀덴 로고를 달고 팔리게 되었죠)

40여년 동안 이름을 이어온 호주 고유모델이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호주에서 모든 설계 (플랫폼, 디자인, 상품기획)를 진행한 준대형 세단인 VE/VF 코모도어의 대체자를 구하는 일에 착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죠.

참고로 VE/VF 코모도어의 롱휠베이스 파생형인 카프리스는 역시 비운의 차량인 GM대우 베리타스의 원본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더 이상 자체생산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홀덴만을 위한 모델을 만들 수는 없는 노릇.

홀덴은 하는 수 없이 GM의 유럽지부이자 이미 아스트라 (준중형 해치백)를 들여오고 있던 오펠이 한창 개발중이던 인시그니아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현재 한국에 판매중인 쉐보레 말리부와 플랫폼을 공유하는 2세대 인시그니아. 원래 오펠은 유럽시장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말리부처럼 6기통 이상의 엔진 호환성을 설계에서 제외시키려 했으나, 홀덴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3.6L V6 엔진이 기본에, 콜벳에도 들어가는 V8 LS3 엔진까지 선택가능했던 VE/VF 코모도어의 후속으로 점찍어둔 차량이 4기통 엔진만으로 출시된다면 코모도어의 거의 유일한 고객층인 호주/뉴질랜드의 잠재구매자들의 눈높이에 맞출수 없음이 불보듯 뻔했죠. 그렇다고 V8 엔진을 넣기엔 전륜구동 플랫폼과 호환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에 홀덴은, 같이 인시그니아를 받아 중형세단 '리갈' (얘는 아예 인시그니아와 동형 모델이었습니다) 의 후속으로 투입시킬 예정이었던 고급 브랜드 뷰익과 함께 오펠에 로비를 했고, 오펠 설계진은 이를 받아들여 V6 엔진 호환성을 추가하게 되었습니다.

출처
"To its credit, Holden attempted to make the best of a bad situation with the ZB. Before it was announced that local manufacturing would come to an end, Holden was considering building the next Commodore locally.

However, even if the local car industry had survived, the follow-up to the VF was always going to use Opel’s global FWD/AWD and transverse engine E2 architecture as its base. When it became an inevitability that the next Commodore after the VF wouldn’t be built at Elizabeth, but before the public became aware, Holden (along with Buick) began lobbying their GM counterparts in Europe that were leading the ZB’s development for a V6 engine option to fit to the VXR flagship at a bare minimum.

Eventually the Insignia’s German engineering team conceded and included a V6 engine option."

그러나 설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던 만큼 홀덴이 원했던 캐딜락제 3.0L 트윈터보 400마력 V6가 아닌, 3.6L 315마력 V6를 받게 되었고, 고성능 디비전인 HSV의 추가 개발을 통해 전술한 캐딜락 엔진을 넣어 출시하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미국 GM에서 개발한 엔진을 유럽 GM에서 개발한 플랫폼/구동계와 조합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엎어지게 됩니다.

사견을 덧붙이자면, 저는 GM의 이런 정책이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같은 그룹 내 계열사끼리 로비를 해야 설계가 반영되고, 같은 GM의 차량임에도 미국과 유럽지부 각각 서로의 호환성을 크게 고려하지 않은 설계로 인해 상품성 개선이 엎어지는 걸 보면 참 답답하네요. 이미 브랜드 수집놀이를 하다가 파산한 전적이 있음에도 이런식으로 했다는게 참 어이없네요;;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기존 코모도어 대비 일신된 실내 구성과 유럽풍의 날렵한 디자인, 그리고 처음으로 추가된 AWD 옵션으로, 일말의 기대를 걸 정도는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8년, 드디어 신형 홀덴 코모도어가 출시되기에 이릅니다.

https://youtu.be/On-BU06To4Y

과연 신형 코모도어는 위기의 홀덴을 살릴 수 있었을까요? 2편에서 이어집니다.